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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그만두는 법

인공지능이 계속하는 비용을 거의 없앤 시대에, 잘 그만두는 능력은 더 능동적인 결정이 됐다. 시작하는 것은 이제 쉬워졌다. 어려운 쪽은 남았다.

최근 전문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을 처리했다. 언어 모델이 가설을 세우고, 근거를 정리하고, 실행까지 마쳤다. 그런데 마무리 단계에서 계산을 다시 해보니 실익이 크지 않았다. 그래서 중단했고 이런 단계가 두세 번 나왔다. 그 일에서 인공지능이 하지 못한 유일한 동작이 그것이었다. 그만두자는 판단만은 나에게서 나왔다.

그만두는 일에는 채점표가 없다. 무언가를 만들면 채점을 할 수 있고, 검증을 잘하면 최소한 정상적인 산출물 하나는 남는다. 그런데 잘 그만두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잘 그만둔 사람과 처음부터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겉으로는 똑같아 보인다.

현시점에서 인공지능은 이 동작을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요청이 들어오면 응답을 만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어보면 답한다. 더 해볼까 물으면 방법을 알려준다. 실익이 없으니 여기서 접자는 판정을 먼저 내리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아직 이를 중단하는 것에 대한 학습 지침 사항이 별도로 없어서 그런 것 같다.


그리고 인공지능이 이 판단을 예전보다 더 어렵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전에는 자원이 한계를 알려줬다. 시간이 없고, 비용이 들고, 사람이 지치니까 자연히 멈추게 됐다. 계속하는 것 자체가 비쌌으므로 멈추는 데 별도의 결단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은 계속하는 비용이 거의 없다. 한 번 더 돌려보는 것, 다른 각도로 다시 짜보는 것, 반론을 하나 더 만들어보는 것이 전부 몇 분이면 된다. 자연스럽게 멈추던 지점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멈추는 일이 예전보다 훨씬 능동적인 결정이 됐다.

매몰비용도 더 무거워진다. 이미 만들어진 문서가 그럴듯하면 접기가 어렵다. 아깝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반쯤 만든 것이 초라해서 버리기 쉬웠는데, 이제는 반쯤 만든 것도 완성된 모양을 하고 있다.


다만 잘 그만두는 것과 그냥 하지 않는 것은 구분해야 한다.

그냥 하지 않는 것은 평가를 거치지 않은 회피다. 해보지 않았으니 실익이 얼마인지도 모른다.

잘 그만두는 것은 그 반대다. 실제로 해보고, 어디까지 가능한지 확인하고, 그 위에서 여기까지가 값이 나온다고 판정하는 것이다. 마무리까지 해봐야 실익이 계산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잘 그만두려면 먼저 해봐야 한다.

이렇게 보면 그만두는 능력도 만드는 능력의 부산물이다. 얼마나 걸리는지, 무엇이 남는지, 어디서 막히는지를 겪어본 사람만 접을 시점을 안다. 지난번에 검증 능력에 대해 쓰면서 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이쪽도 구조가 같다.


앞으로 사람이 할 일을 이야기할 때 판단력이나 검증 능력은 자주 언급된다. 그만두는 능력은 잘 다뤄지지 않는다. 아마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일해보면 이것이 제일 자주 쓰인다. 그리고 도구가 무한히 계속할 수 있게 된 시대에는 더 그럴 것 같다.

시작하는 것은 이제 쉬워졌다. 어려운 쪽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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