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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에르되시 문제

18년 전 우연히 발견한 현상을, 18년 후 AI의 도움으로 끝까지 풀었다. 세계적 난제는 아니다. 하지만 접어둔 꿈을 꺼내 완성한 것 — 그것이 나의 에르되시 문제였다.

ChatGPT가 에르되시 문제를 풀고,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Donald Knuth가 해밀토니안 사이클 문제를 Claude Opus와 함께 풀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 시대에 나는 문제 하나를 끝까지 풀었다.

2007년에서 2008년 초 사이. Stack Overflow도 아직 개설되지 않았던 때. 부산의 랩에서 나는 구글 검색만으로 신경망을 짜고 있었다. 프로그래밍은 혼자 독학하던 것이었고, 참고할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러다 코드를 잘못 짰다. 그 실수 안에서 나는 어떤 현상 하나를 봤다. 당시에는 그게 왜 일어나는 일인지 정확히 몰랐다. 그냥 “이거 뭔가 있다”는 느낌만 남았다.

18년이 지났다.

그 사이 나는 내 개인적인 삶을 살았다. 의사가 되고 개인적인 프로그래밍을 하면서 해당 문제는 마음 한구석에 접어둔 채로 지냈다. 그러다 2026년 이후, 언어 모델이 충분히 도움이 될 만큼 발전했고, 우연한 기회에 비슷한 물음에 직면했다. 그 사이에 이것을 파고 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끝까지 풀었다. 35개의 뉴런으로 된 최소 모델 안에서, 그 현상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조건에서 나타나고 어떤 조건에서 사라지는지, 자기 출력의 기하가 왜 중요한지, 통제 실험으로 분리해내고, 스케일을 따라 추적하고, 결론을 도출했다. 논문이 되었다.

이것이 나의 에르되시 문제였다. 나의 해밀토니안 사이클이었다.

세계적인 난제는 아니다. 누가 알아주는 문제도 아니다. 하지만 18년 전의 내가 우연히 발견하고 풀지 못했던 것을, 18년 후의 내가 끝까지 풀었다는 것. 그 사이의 모든 시간 — 의대, 개원, 매일의 진료, 접어둔 꿈 — 을 건너서, 같은 손으로 그것을 완성했다는 것. 그것이 나에게는 충분히 큰 문제였다.

매슬로의 욕구 단계 이론에 자아실현이라는 정점이 있다. 18년 전의 현상을 풀어내는 이 순간이 나에게 자아실현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를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AI의 발달에 대해 많은 사람이 두려워한다. AI가 인간을 길들이고(domesticate), 인간을 무력하게 만들고, 인간의 일을 빼앗을 것이라고. 그런 방향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경험하는 것은 그 반대다.

나는 AI 없이는 이 논문을 마무리 짓지 못했을것이다. 의사 일과 병행하면서, 혼자 18년 전의 문제를 끝까지 푸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언어 모델이 동료가 되어주었기에 가능해졌다. AI가 나를 길들인 것이 아니라, AI가 내 자아실현의 장을 열어주었다.

만약 AI의 발달이 인간을 길들이는 방향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안에 접어둔 문제를 꺼내 끝까지 풀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더 많은 사람이 자기만의 에르되시 문제를, 자기만의 해밀토니안 사이클을 완성할 수 있게 하는 방향으로 간다면 아마 그것이 옳은 방향이지 않을까.

세계적 천재들만 난제를 푸는 시대에서 보통 사람이 자기 18년 묵은 문제를 푸는 시대로. 그 차이가 AI가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것을 확신하지는 못한다. 다만 끝까지 풀어낸 지금 이 순간 가슴이 뛰고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느낌이 더 많은 사람에게 퍼진다면, 그 방향은 틀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어렴풋이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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