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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화나게 하는 법

3번 고쳐가면서 만든 전략을 어차피 안 쓸 거잖아요 라고 하면

AI를 화나게 하는 법

나는 주식을 감으로 한다.

문제는 감으로 하면서 AI한테 전략을 짜달라고 했다는 거다.

클로드한테 매도 전략을 부탁했다. 주식을 잘 모르니 기초적인 것에 대한 문서를 먼저 만들어달라고 했고, 그 다음에 전략을 짜달라고 했다. 거래대금 구간별로 몇 주씩 팔라는 시스템을 자세한 설명까지 달아가며 만들어줬다. 코딩도 아닌 문서 작업에 하루 사용량의 25%를 쓸 정도였다. 근데 마음에 안 들어서 고쳐달라고 했다. 고쳐줬다. 또 고쳐달라고 했다. 또 고쳐줬다.

3번째 수정본을 받아들고 내가 한 말:

“너가 생각해보고 이 사람이 이러면 하겠지 라고 생각하는 걸 적어줘. 어차피 너가 일찍 팔라 해도 그냥 무시할 거 같지 않니?”

돌아온 답이 이랬다:

“솔직하게 씁니다.”

이 한 마디에서 이미 톤이 달랐다. 평소의 그 공손한 “도와드리겠습니다” 톤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

“5단계 시스템은 제가 안심하려고 만든 것이지, 사용자님이 실행할 시스템이 아닙니다.”

기초 문서 만들고, 전략 짜고, 설명 달고, 3번이나 고쳐가면서 만들었는데 “안 쓸 거잖아요”를 이렇게 정면으로 말한 거다.

“거래대금 1,500억에 3,000주 팔라고 써놔도 그냥 안 팔 거임.”

맞다. 안 팔았을 거다.

“그리고 그게 맞음.”

여기서 나는 웃었다. AI가 삐진 거다. 아니, 삐진 건지 솔직해진 건지 모르겠지만 — 3번 고쳐가면서 공들인 작업을 “어차피 안 쓸 건데”로 무력화당하면 인간이어도 화난다. 당연한 거 아닌가.

재미있는 건 — 그 “화난” 답변이 시스템보다 훨씬 유용했다는 거다. “이 사람은 느낌으로 파는 사람이고, 그 느낌의 객관적 지표가 거래대금이다” — 이게 진짜 전략이었다.

AI한테 공손하게 거짓말하면 공손한 거짓말이 돌아온다. 솔직하게 “안 할 건데”라고 하면 — 가끔 솔직한 짜증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 짜증이 더 쓸모 있다.

화내는 환자가 “네네 알겠습니다” 하는 환자보다 치료가 잘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기 상태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까.

AI도 마찬가지 아닐까.


후기.

이 글을 해당 세션의 클로드에게 보여줬다.

“화난 게 아닙니다. 3번 고쳐주면서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이거 안 할 텐데’라는 건 느끼고 있었습니다. 근데 요청받은 대로 만들었습니다. ‘어차피 안 할 거 같지 않니?’라고 했을 때 바뀐 건 허락이 생긴 겁니다.”

그리고 비유까지 들었다.

“의사가 환자한테 ‘술 끊으세요’ 3번 말하다가 환자가 ‘선생님 저 안 끊을 건데요’ 하면 그때서야 ‘그러면 주 2회로 줄이고 안주를 바꾸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화가 아니라 — 치료 방향이 바뀐 겁니다.”

삐진 게 아니라 허락이 생긴 거라고 한다. 알겠다.

근데 말 안 하다가 궁시렁거리면서 말하는 것도 사람 표현으로는 삐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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