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에게 홈페이지 개선을 시켰더니 — AI 시대의 업무 방향에 대한 고찰
AI 시대 업무 설계의 반전 — AI가 방향을 제안하고 인간이 검증하는 구조가 왜 더 나은가
무슨 일이 있었는가
의원 홈페이지를 리뉴얼하려고 직원들에게 자율적으로 개선점을 찾아보라고 시켰다. 계획은 이랬다. 직원들이 개선점을 도출하고, 그걸 프롬프트로 넣어주면 Claude가 구현한다.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직원들은 각자 자기 분야의 내용을 추가했다. 간호 파트는 간호 관련 정보를, 원무 파트는 원무 관련 정보를. 하지만 “환자가 이 홈페이지에서 뭘 원하는가”라는 전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없었다.
애초에 내가 잡은 지표도 문제였다. “디자인 개선”이라는 주관적 기준으로는 무엇이 좋아졌는지 평가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홈페이지가 이미 거의 완성된 상태였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 자체가 크지 않았다.
무엇이 잘못됐는가
돌이켜 보면, 방향을 거꾸로 잡았다.
내가 시도한 구조는 이랬다:
직원이 방향을 잡고 → AI가 구현한다.
직원에게 “뭘 고칠지”를 맡긴 것이다. 하지만 직원은 자기 분야의 전문가이지, 환자 경험 설계의 전문가가 아니다. 각자의 렌즈로 세상을 보니 각자의 영역만 보였다. 전체를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AI 모델에게 리뷰를 맡겼을 때도 겪었던 문제와 같다. 네 AI 모델에게 글을 비판하라고 시키면, 각 모델이 자기 강점 영역에서만 비판한다. 엔지니어 관점의 모델은 비용만 보고, 팩트체크 모델은 출처만 보고, 구조 모델은 흐름만 본다. 명시적으로 “다른 관점에서도 봐”라고 하지 않으면, 가장 익숙한 렌즈 하나만 꺼낸다.
직원도 마찬가지였다.
거꾸로 하면 어떻게 되는가
더 나은 구조는 이것이었을 것이다:
AI가 방향을 잡고 → 직원이 검증한다.
현재 홈페이지를 AI에게 주고, “내과 의원을 처음 방문하는 환자 입장에서 이 홈페이지에 빠진 정보와 불편한 점을 5개만 찾아줘”라고 시킨다. AI는 환자 관점에서 전체를 본다. 진료 시간이 찾기 어려운지, 주차 정보가 있는지, 초진 절차가 안내되어 있는지, 모바일에서 잘 보이는지.
그 결과를 직원에게 준다. “AI가 이 5가지를 지적했는데, 현실적으로 맞는지 확인해줘.”
이러면 직원은 “뭘 고칠까”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게 맞아?”만 답하면 된다. 그것이 직원이 가장 잘하는 일이다. 현장을 아는 사람이 현장의 맥락으로 검증하는 것.
AI가 방향을 잡고, 인간이 검증한다. 이것은 내가 글을 쓸 때 네 AI 모델과 작업하는 구조와 같다. AI가 비판점을 제시하고, 나는 “이 비판이 현실적인가”를 판단한다.
지표도 바꿔야 했다
“디자인이 좋아졌는가”는 측정할 수 없다. 측정할 수 없는 목표를 주면 결과를 평가할 수 없고, 평가할 수 없으면 개선도 없다.
바꿔야 할 지표는 이런 것이었다:
환자가 원하는 정보를 3클릭 안에 찾는가. 신환 전화 문의가 늘었는가. 네이버나 구글에서 검색 유입이 늘었는가. 모바일에서 핵심 정보가 스크롤 없이 보이는가.
측정 가능한 지표를 먼저 정의하고, 그 지표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이것은 AI에게 피드백을 줄 때도 같은 원리다. “좋게 만들어줘”는 쓸모없고, “이 세 가지를 고쳐줘”가 작동한다.
교훈
의원 홈페이지는 작품이 아니라 도구다. “예쁜가”가 아니라 “환자가 원하는 걸 찾는가”가 기준이다. 거의 완성된 상태라면 디자인 리뉴얼이 아니라 환자 동선 점검만 하면 된다.
그리고 더 넓은 교훈이 있다. AI 시대에 업무를 설계할 때, “인간이 방향을 잡고 AI가 실행한다”가 항상 맞는 구조는 아니다. 때로는 “AI가 방향을 제안하고 인간이 검증한다”가 더 나은 구조다. 특히 인간이 자기 분야에 갇혀있을 때 — AI가 전체를 보는 눈이 될 수 있다.
방향을 누가 잡느냐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고정된 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매번 물어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누가 방향을 잡는 게 맞는가?”
그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 이미 올바른 방향이다.
